2020년 개봉한 클로에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는 위대한 황금사자상(베니스영화제), 골든글로브 드라마 작품상·감독상 등 굵직한 작품상을 석권하고, 2021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주요 3관왕을 기록한 걸작입니다. 경제 붕괴 후 밴을 타고 미국 서부를 떠도는 노년 여성 퍼른(Fern, 프랜시스 맥도먼드)은, 전통적인 집이나 안정된 삶 대신 자유, 연대, 그리고 느린 치유를 선택합니다. 픽션과 다큐가 어우러진 형식과 솔직한 감정 묘사로 전 세계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습니다.
붕괴된 경제 속, 길 위의 삶
네바다 작은 마을 엠파이어에는 석고 공장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던 퍼른은 남편과 공장 폐쇄 이후 마을을 떠나야만 했고, 은퇴한 후에도 집을 유지할 수 없어 자신만의 밴 ‘밴가드’에 집을 꾸려 사는 삶을 시작합니다
그녀는 미국 서부 전역의 국립공원과 캠프장에서 계절 일용직을 하며 생계를 이어갑니다. 쓰기 작업이나 캠프 안내, 레스토랑 보조 등 일을 하면서 자율성 있는 이동 생활을 지속합니다. 이 과정에서 실존 노마드인 린다 메이, 스완키, 밥 웰스 등과 관계를 맺으며 단절된 개인에서 연대를 찾는 삶으로 조금씩 변화합니다
퍼른은 숙소 정비 일을 도우며, 한때 배려를 보였던 데이브와 짧은 로맨스를 시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남겨진 슬픔, 즉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에 대한 애착을 안고 살아갑니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퍼른이 밴을 떠나 다시 영구 주거에 잠깐 돌아갈지 고민하는 장면이 나오며, 최종적으로는 다시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이는 집 없지만 고립되지 않은 삶, 즉 노매드들 사이의 우정과 지지를 통한 새로운 ‘집’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귀결됩니다.
삶과 감정을 담은 연기
이 작품은 프랜시스 맥도먼드 외에도 실제 노마드들이 자기 자신을 연기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퍼른 역의 맥도먼드는 ‘은퇴, 고립, 상실’의 심리를 수수하고도 깊이 있게 표현하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데이브를 연기한 데이비드 스트래선은 퍼른의 삶에 가벼운 온기와 공감의 손길을 더합니다.
- 프랜시스 맥도먼드 – 퍼른 역 잔잔하지만 내면의 강인함을 가진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형성,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감정의 흐름을 사실적으로 전달했습니다
- 데이비드 스트래선 – 데이브 역 퍼른에게 잠시나마 동반자적 역할과 인간적 온기를 전달하며, 인생 후반부의 재회와 연대의 의미를 세밀히 표현했습니다
- 린다 메이, 스완키, 밥 웰스 등 실제 노마드들 - 영화에 자연스러운 디테일을 더하며, 제작의 진정성과 공감을 높이는 주요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픽션과 다큐의 경계를 흐리는 연출 덕분에, 배우와 실존 인물이 하나의 경험적 층위를 이루며 ‘삶을 연기’하게 되었습니다. 맥도먼드는 이 양면성을 완벽히 균형 있게 소화해 퍼른의 내적 고통과 자유의 갈망을 동시에 전달했습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삶의 철학
픽션과 다큐의 경계 허물기
감독 클로에 자오는 노마드생활자들을 실제 배우로 등용하고, 맥도먼드도 덩달아 노마드로 생활하며 촬영에 임했습니다. 이런 리얼리티가 ‘로드 무비가 아닌 삶의 기록’이라는 깊은 몰입감을 줍니다
정체성 대신 연대의 집
퍼른이 ‘집’을 잃었지만 완전한 고립으로 빠져들지 않는 이유는 노마드 공동체와 만남과 교류 덕분입니다. 이들은 서로의 삶을 숙지하고 응원하는 ‘이동하는 가족’을 형성하며, '집이란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연결’임을 상기시킵니다
경제 붕괴와 개인의 재정의
2008년 경제 위기로 자아와 가정, 안정된 생활이 붕괴되고 떠돌이 신분이 된 이들을 통해, 영화는 자본주의 현대 사회의 취약함과 개인이 절망 속에서 만드는 의미 있는 삶의 형태에 대해 묵직하게 질문합니다
시각과 사운드로 느끼는 감정
자연 경관을 담은 장면들 안에 실존 인물의 대화, 캠프파이어의 소리, 밴에서의 조용한 묵상 등은 감정의 여운을 시각보다 음향으로 녹여전달하며, 최소한의 음악 속에서도 자율과 고립, 공감과 지지라는 핵심 감정이 커집니다.
라이프스타일 선언, 아니 삶의 대안
퍼른의 삶은 일부 시청자에게 반소비·자급자족·공동체 지향적 삶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집이 없지만, 결코 집 없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대사는 정체성과 삶의 태도를 재정의하게 합니다